전략과 시스템
작전이 승리에만 골몰하는데 비해 전략은 승리 후 복구까지를 포함해서 생각한다. 소위, 토털 시스템 어프로우치(Total System Approach)다. 시스템 이론이 발전하기 이전에도 시스템은 있었다. 다만 그 시스템을 시스템이라는 사고체계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전략이라는 것이 “경쟁하는 두 개체 간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여 요망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때, 피/아간에 손실이 가장 적은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경쟁이 끝나고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손실이나 손상을 회복해야 하는데 경쟁 간 많은 손실이나 손상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큰 부담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답은 간단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경쟁에 소요되는 파워 투사 시스템(Power Projection System)을 상정하고 그 시스템의 작동에 가장 중요한 요소(Vital Element)를 선정한 후, 목표 달성에 시스템이 어느 정도 마비되는 것이 가장 적절한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면, 중요한 요소(군사적으로는 重心: Center of Gravity)를 압박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면 된다.
따라서 파워 투사 시스템의 중요한 요소 또는 핵심요소를 압박함으로서 상대방에게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면그 이상 좋은 방법은 없다. 호신술이 가장 적당한 예가 될 것이다. 호신술이란 상대방의 급소를 압박하거나 비틀어서 상대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다. 그러니 호신술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급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군 지휘관이 호신술 사범이 급소를 파악하고 있듯이 적의 중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지휘관은 진정으로 명 지휘관이 될 것이다.
비유하면, 신체는 하나의 완벽한 파워 투사 시스템이다. 신체 시스템에서 급소는 군사적 차원에서는 중심이다. 호신술은 급소를 일시적으로 압박,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여 치한으로부터 자신을 방호하는 기술을 말한다. 물론, 급소를 압박하거나 비틀어서 일시적으로 시스템을 마비하는 것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급소를 가격하여 영원히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것은 언제나 설정한 목표를 정점으로 어떠한 시스템을 구성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고 이 작업은 전략가의 몫이다.
위에서 예로든 신체적 시스템은 심리적인 시스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상대에게 진정으로 항복을 초월하여 승복을 받아내려면 신체와 연관하여 상대의 심리적 시스템까지 포함한 시스템으로 상정하여 심리적, 신체적 급소를 압박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한다. 그 가격의 정도는 언제나 목표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최고의 전략은 시스템 마비이다. 전쟁에 있어 피아 최소의 희생으로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다.
적의 전투력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적의 전력 투사시스템을 마비시킴으로서 가능하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적의 전투력 투사시스템의 핵심 노드를 식별하여 파괴한다면 적의 전투력 투사 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 노드를 군사적 용어로 바꾼다면 중심(重心 , Center of Gravity)에 해당한다. 그런데 핵심노드의 얼마만큼을 파괴하면 좋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개략적인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힌트를 얻었다. 영화 ‘다이하드 4.0’에서 테러리스트는 모든 사이트를 공격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허브만 잘 알고 공격할 경우 전체 네트워크를 마비 상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중요한 노드 1% 만 공격해도 전체 인터넷 기능의 절반이 마비되고 4% 정도를 공격하면 인터넷은 연결이 완전히 끊긴 조각으로 파편화될 수 있다. 위 구절이 시사하는 바는 전쟁에도 전력투사 시스템의 핵심노드 즉 중심을 4%만 파괴해도 적은 전투단위가 파편화되어 전투력 투사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투력이 첨단화하면 할수록 그 정도가 심해질 것이다.
마비전략
마비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시간적 측면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혁명적 마비와 서서히 일어나는 점진적 마비로 구분할 수 있고 결과적 측면에서 일시적 마비와 영구적 마비로 나눌 수 있다. 군사적으로 요망하는 마비는 가능하다면 수술을 위해 실시하는 마취 형태의 마비가 가장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마비전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상대를 마비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상대가 원상태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 존망의 문제를 걸고 있는 전쟁에서 진료과정의 마취와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마비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치한을 제압할 때 쓰는 호신술 같이 급소를 비틀거나 가격하여 일시 기절하게 만드는 방법이 최상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최소의 파괴로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것이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심(重心)을 정확히 식별하여야 하고 그 식별된 중심을 가장 효율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을 선정해야 한다. 하나의 수단으로 불가능할 때에는 다양한 수단을 가장 최적의 형태로 통합하여야 한다.
상대를 마비시킨 후 소기의 전쟁 목적을 달성하면 원상 복귀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비전은 전략적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의 형태를 기동전과 소모전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어디까지나 전쟁의 외형적 양상을 보고 분류한 것이고 마비전이란 전쟁의 목적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의도가 함의된 형태다. 그러니 마비전은 전쟁을 종결한 결과가 전쟁에 목적에 가장 근접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장에서 성공적인 마비전을 위해서는 기동성 있는 사고와 기동성 있는 전투력이 요망된다. 과거 화력수단이 제한된 시대에는 기동부대를 신속하게 이동하여 적의 중심을 공격하여 적을 심리적 공황 내지는 전체 전력체계에 혼란을 초래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 좋은 예가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의 불란서 침공이다. 그러나 정보 통신이 발달하고 화력 투발 수단의 리치가 길어진 현재에는 적의 전투력 투사 시스템 핵심 노드를 화력으로 타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이 더욱 바람직하다. 그 예는 코소보 전이다. 여기서 기동부대는 아예 투입도 하지 않았다.
기동에 의한 마비보다 화력에 의한 마비가 효과적이다. 첫째,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 짧은 시간에 전쟁을 종결할 수 있다. 셋째, 첫째와 둘째의 이유는 국민의 염전 사상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세계 여론의 지탄을 면하게 한다. 상대국을 점진적으로 마비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전쟁보다는 정치적 방법이다. 영국이 식민지 시대에 중국에서 구사한 방법이다. 중국인들에게 아편을 투입하여 중국인들을 폐인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 거대한 중국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전 중국인을 폐인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방법은 세계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영원히 비난받는 행동으로 남는다. 결론적으로 가장 좋은 마비의 방법은 급소를 - 전장에서는 적의 전투력 투사 시스템의 핵심 노드 - 순간적으로 가격하여 기절시켜 전쟁의 목적이 달성되면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전략의 핵심은 시스템 마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서 승패는 언제나 전투력을 발휘하는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되었는가의 결과로 나타났다. 승리한 측은 자신의 전투력 발휘시스템을 온전히 유지하여 원하는 전투력이 투사되게 함과 동시에 상대의 전투력 발휘시스템을 마비시켰다. 고대 전쟁사나 최근의 걸프전 그리고 코소보전에서 나타난 일관성은 그 나름의 시스템에서 전략적 중심 역할을 하는 고리를 찾아내어 파괴 절단 또는 압박함으로써 적으로 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것은 전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서는 경쟁사의 시스템을 연구한 후 가장 급소가 되는 부분을 찾아내어 압박을 가하는 것이 전략이며, 이는 운동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 경기인 복싱에서는 상대선수의 몸이 완전한 시스템이므로 상대의 주먹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포인트를 찾아 가격하는 것이다. 만일 상대의 주먹을 계속 때린다면 이는 아주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고 그 대신 옆구리를 가격하여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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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항 | ||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 예비역 육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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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항전문위원 marketing@di-f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