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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항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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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 ‘김진항 장군의 전략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글쓴이 김진항 장군은 대구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30기)를 졸업하고, ‘군인의 꽃’으로 불리는 사단장을 거쳐 육군포병학교장을 역임한 예비역 육군 소장이다. 예편 뒤 한국안보문제연구소 부소장을 지내다가 2008년 2월29일부터 옛 비상기획위원회를 통합해 신설된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을 맡고 있다. ‘김진항 장군의 전략이야기’는 군사 분야뿐 아니라 재난안전정책, 나아가 일상생활에까지 두루 적용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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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이라는 용어는 지금 이 시각에도 도처에서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전략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 명확한 의미를 모른 채, 의미가 모호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략이란 약자에게 필요한 것”
전략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화두를 안고 살아온 지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무엇이든지 제대로 하려면,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1만 시간은 하루 세 시간을 투자한다고 가정할 때 대략 10년 정도가 걸린다. 매일 3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했지만, 근 20년간 머릿속에 전략에 대한 생각을 담고 살아왔다. 전략에 대한 여러 서적을 참고하여 ‘어떻게 하면 전략을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전략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략을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지난해 5월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머리를 치는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올랐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전략이란 자신에게 유리한 경쟁의 틀로 바꾸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전략이란 약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강자는 전략이 별도로 필요 없다. 강자는 그냥 공격하면 되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이기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그런데 약자도 강자를 이겨야 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약자도 강자를 이겨야 한다. 그러면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전략이다.
‘경쟁의 틀’ 바꾸면 약자가 승리
부언하면 비록 현재의 상황에서는 약자이지만 전략적 상황판단을 거쳐 약자가 강자가 될 수 있는 경쟁의 틀로 바꾸어 경쟁하게 만들면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는 약자지만 장차에는 강자가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전략이다. 전략을 활용하여 강자가 된 후의 제반 활동은 오로지 작전 또는 전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상 만사는 상대적이고,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상의 이치 때문이다.
현재의 불리한 점이 상황이 바뀌면 유리한 점이 될 수 있고 같은 상황에서도 생각을 달리하면 그러한 불리한 점이 오히려 유리한 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영국군 장교 T E 로렌스(Lawrence)의 활약상에서 잘 드러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우디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 군대를 몰아내기 위하여 사막 유목민인 베두인족으로 유격대를 조직한 로렌스는, 메디나에 진을 친 막강한 오스만 군대와의 전투에서 절대로 무모한 정면 대결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오스만 군대의 보급선인 철도를 공략하고, 사막을 가로질러 홍해의 요충지 아카바를 기습하는 등 신출귀몰한 게릴라 작전을 구사해 오스만 군대를 몰아냈다. 베두인족은 유목민이기 때문에 그 지역의 지형을 잘 알고 있으며, 오스만에 비해 열세한 전력으로는 정규전으로 경쟁이 되지 않으므로, 지역 주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릴라전을 택한 것이다.
골리앗 눞힌 다윗의 돌팔매질 전략
로렌스 승리의 비결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비슷하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방법이야말로 진정 전략의 진수다. 다윗은 목동으로서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거인 골리앗과 싸워야하였다. 그런데 기존의 보편적인 싸움 방식대로 접근전을 시도했다면, 다윗은 골리앗에게 한 주먹꺼리도 안 되는 상대였다. 이에 다윗은 머리를 썼다. 즉, 전략적 사고를 한 것이다.
접근하면 질 것이 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돌팔매질을 이용하여 원거리 싸움을 하기로 전략을 짰다. 목동 생활을 하면서 다윗은 원하는 표적을 언제든지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돌팔매질 실력을 익혔다. 싸움이 시작되자 다윗은 골리앗이 잡으려는 것을 피해서, 돌팔매질로 골리앗의 급소인 눈을 맞춰 골리앗이 앞을 보지 못하게 한 다음 결정타를 날려 골리앗을 무너트렸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유리한 접근전을 회피하고 자신의 장기를 살릴 수 있는 돌팔매질을 최대한 활용한 원거리 전투를 택하여 이긴 것이다.
처럼 기존의 경쟁의 틀에서 열세라고 판단되면 그 틀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는 것이 전략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긴 경우는 절대 없다. 그렇지만 자세히 상황을 분석해보면 강자와 약자는 상황에 따른 상대적인 문제일 뿐이다. 약자란 것은 기존의 경쟁의 틀에서 약자로 평가되었을 뿐이지 언제나 약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경쟁의 틀에서 약자라고 평가되었을지라도 전략적 상황을 평가하여 강자가 될 수 있는 경쟁의 틀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 짚어내는 통찰력 필요”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자 이반 어렝귄-토프트(Arrenguin-Toft)가 지난 200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전쟁 중 인구와 군사력에서 10배 이상 차이가 난 ‘다윗(약소국)과 골리앗(강대국)의 전쟁’을 분석한 결과, 골리앗의 승률은 71.5%였다. 그러나 강자의 룰에 따르지 않은 싸움에선 다윗이 63.6%로 이겼다.
1951년 베트남 공산반군의 프랑스군 격퇴, 조지 워싱턴이 영국을 상대로 벌인 미국의 독립전쟁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고정관념이나 고착적인 사고 때문에 경쟁의 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으며, 현재의 단서 또는 그 지식의 연장선상에서 사물을 판단하는 경향으로 인해 창조적 사고가 쉽지 않다. 따라서 싸워서 이기기 힘든 경쟁의 틀을 깨고 이길 수 있는 경쟁의 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그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를 정확히 짚어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략이란 항상 유리한 경쟁의 틀을 만들어 내는 방법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모든 것은 상대적일 뿐 언제나 불리한 것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전략을 구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밑바탕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속에서도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현재는 불리하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유리한 여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전략은 존재한다.
김진항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