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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자살예방정책의 핵심인 위험군 발굴과 사후관리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자살시도자가 발생해도 관련 정보가 자살예방센터로 넘어가지 않는 사례가 상당수에 달했고, 어렵게 연계된 고위험군 가운데 실제 심리상담 8회를 모두 받는 비율도 극히 낮았다. 자살자 유족에 대한 정보연계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대상자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과 청년층의 위험군을 가려내는 기존 정신건강검진에도 한계가 확인됐다. 특히 청소년 자살위험군을 판별하는 검사에서 실제 자살한 학생 상당수가 일반군으로 분류됐고, 20대 남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밀도가 높은 병역판정 심리검사 결과가 있음에도 이를 자살예방에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26일부터 12월 19일까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취약계층 지원실태Ⅰ(자살예방 분야)’ 감사를 실시하고 이 같은 문제점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2024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 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0.8명의 약 2.7배에 달했다. 같은 해 자살자는 1만4,872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25년 자살자는 잠정적으로 1만3,900명으로 전년보다 972명 감소했지만, 자살예방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싼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먼저 드러난 문제는 자살시도자를 발견하고도 자살예방센터로 연결하지 못하는 정보연계의 허점이다.
현행 자살예방법은 자살시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서가 자살시도자의 인적정보를 수집해 자살예방센터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두 기관 사이에 누가 통보를 책임져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아 정보가 누락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었다. 감사 결과 2022년 8월부터 2024년까지 소방관서가 응급실로 인계한 자살시도자는 모두 2만4,798명이었지만, 이 가운데 자살예방센터에 정보가 제공된 사람은 1만2,452명에 그쳤다. 나머지 1만2,346명, 전체의 49.8%는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환자의 의식 저하 등으로 인적정보 자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지만, 경찰과 소방 가운데 어느 기관이 통보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업무체계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경찰은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례가 2023년 3만8,491건에서 2024년 4만9,492건으로 늘었지만, 소방은 같은 기간 6,826건에서 4,801건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나 소방의 개입 없이 스스로 응급실을 찾은 자살시도자가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2024년 응급실 위기대응센터 사후관리사업 자료를 보면 자살시도자 3만309명 가운데 61.1%인 1만8,528명이 경찰이나 소방대원의 동행 없이 직접 응급실을 방문했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는 응급의료기관이 자살시도자 정보를 자살예방센터에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다. 그 결과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응급실과 위기대응센터를 찾은 자살시도자 12만1,178명 중 9만8,694명, 81.4%의 정보가 자살예방센터에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위험이 높은 사람을 조기에 찾아내 심리상담과 사례관리를 제공한다는 자살예방체계의 출발점부터 상당수가 빠져 있는 셈이다.
정보가 넘어온 이후에도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자살예방센터는 경찰·소방의 통보나 본인의 방문 등을 통해 자살시도자를 확인하면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사례관리와 최대 8회의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상담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살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만큼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지만, 실제 이용률은 매우 낮았다.
2022년 8월부터 2025년까지 경찰과 소방이 자살예방센터에 연계한 자살 고위험군 18만6,373명을 표본 점검한 결과, 8회의 심리상담에 동의한 사람은 1만536명으로 5.7%에 불과했다. 감사원은 자살시도자에게 심리상담 이외에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이 부족한 것이 낮은 동의율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상담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담에 동의한 이후에도 상당수가 중도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자살예방센터 이용을 종료한 4만8,053명 가운데 8회 이상 상담을 받은 것으로 관리된 사람은 55.7%에 그쳤다. 44.3%는 8회 미만이었고, 이 가운데 8%는 상담 횟수가 아예 0회, 23%는 1~4회에 머물렀다. 상담 실적을 관리하는 방식에서도 허점이 발견됐다. 실제 상담을 하지 않고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방문을 시도한 경우나 단순히 전화를 건 경우를 상담실적으로 기록하는 사례가 있었으며, 402명은 자살로 사망한 뒤에도 상담을 실시한 것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사람을 찾아내는 단계에서 놓치고, 찾아낸 뒤에는 상담이 이어지지 않는 이중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력 문제도 겹쳤다. 자살예방센터 상담인력 1명이 관리하는 적정 인원은 30명 수준이지만 2025년 기준 이를 초과한 센터가 75개소에 달했고, 해당 센터의 상담인력 1인당 관리인원은 평균 47.4명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2026년 신규인력 충원 재원을 배분하면서 센터별 상담인력 1명이 담당하는 관리인원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기존 인건비 배분 비율을 기준으로 재원을 배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위험군은 늘어나는데 현장 상담인력은 적정 수준으로 확보되지 못하는 구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자살자의 가족을 대상으로 한 사후관리 역시 사실상 정보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자살자 유족의 자살위험은 일반인보다 8~9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4년 심리부검 대상 사망자 1,221명 가운데 30%가 이미 자살자의 유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예방법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족의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고 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과 생계비 등을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직권으로 지원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의 전제가 되는 유족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2024년 자살자는 1만4,872명이었으며, 지원 대상 기준에 해당하는 유족은 12만3,513명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경찰이 자살예방센터에 통보한 유족은 3,591명, 전체의 2.9%에 불과했다. 경찰이 변사자 조사를 통해 사망 원인이 자살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2주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업무 매뉴얼상 정보 통보기한은 자살자 발견일부터 3일로 정해져 있어 실제 현장에서 정보 제공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였다.
미성년자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위험군 선별체계도 재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3년마다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를 실시해 자살위험군을 찾아내고 전문기관의 상담과 치료로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2020년부터 2024년까지 10대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5명에서 8.0명으로 증가했는데도 검사에서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비율은 1.2%에서 1.1%로 오히려 감소했다.
실제 해당 기간 자살한 학생 782명의 검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77.4%인 605명이 일반군으로 분류돼 있었다. 현재의 검사방식만으로는 실제 자살위험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전문가 자문에서는 자살위험도를 판단하는 일부 문항이 ‘심각하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와 같이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학생이 낙인을 우려해 사실과 다르게 답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삶의 목적 상실이나 절망감 등 직접적으로 자살을 묻지 않더라도 위험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검사를 보완할 필요성이 제시됐다.
2015년에 개발된 검사체계의 위험군 판단 기준 역시 최근 청소년 자살시도 증가 추세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20대 남성에 대한 정신건강 위험군 선별도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20대 자살률이 2020년 21.7명에서 2024년 22.5명으로 높아지자 20~34세 청년층의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2년으로 단축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건강검진은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실제 자살 위험군을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자살로 사망한 19~30세 남성 5,121명 가운데 정신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은 672명, 13.1%에 그쳤다. 이 가운데 우울증 의심자로 분류된 사람은 138명으로 전체의 2.7%였다. 반면 19세 남성이 의무적으로 받는 병역판정검사의 심리검사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였다. 같은 자살 사망자 가운데 4,915명, 96.0%가 검사를 받았으며, 이 중 1,431명인 27.9%가 정밀검사 대상자로 판정됐다. 특히 병역판정 이후 1년 이내 자살한 329명의 경우 정밀검사 대상 판정 비율이 59.6%에 달했다.
자살 위험을 찾아내는 데 상대적으로 높은 활용 가능성을 가진 자료가 이미 존재하지만, 이를 자살예방정책에 충분히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는 병무청과 협의해 2020년 2월부터 병역판정검사 결과를 공동 활용하고 있지만, 정신과 5~7급 판정자 정보 위주로 지자체 정신건강센터에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자살위험과 연관성이 높은 정밀검사 대상자 정보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검사결과를 정신건강센터에 통보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정신과 5~7급 판정자 가운데 실제 정신건강센터에 제공되는 정보는 2020년 기준 약 6천 명 중 10% 수준에 그쳤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에 병무청과 협의해 병역판정 심리검사 과정에서 자살 위험이 높은 대상자의 정보를 자살예방센터 등에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감사 과정에서 복지부와 병무청은 병역판정 심리검사 대상자도 치료비와 심리상담서비스 등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협의했으며, 이 내용은 2026년 3월 발표된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에도 반영됐다.
-이정직기자
이정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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