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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차세대 119, 또 하나의 시스템으로 끝낼 것인가?

기사승인 2026.01.20  01: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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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한국비시피협회 회장 정영환

재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오늘날의 재난은 단일 사고나 한 기관의 실패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술적 결함, 조직 간 단절, 현장 판단의 오류가 서로 얽히며 증폭되는 복합 재난의 시대다. 이런 현실 앞에서 국가 재난 대응 체계 역시 과거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통합’을 기치로 대규모 재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그 통합은 주로 장비와 플랫폼을 연결하는 기술적 차원에 머물렀다. 조직 간 권한 조정, 정보 공유의 실질적 구조, 통합 지휘 체계라는 핵심 과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는 그 한계를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줬다. 현장에는 기관이 넘쳤지만, 이를 하나의 상황으로 판단하고 지휘할 통합된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는 재난 대응 체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재난을 개별 부처의 업무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핵심 기능으로 재설계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추진 중인 ‘차세대 119 통합시스템 구축 ISMP’ 사업은 이러한 방향과 어긋나 보인다.

소방청 단독으로 발주된 이번 사업은 이름은 ‘차세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방 중심 기존 체계를 고도화하는 데 그칠 우려가 크다. 경찰, 지자체, 보건, 교통, 통신 등 재난 대응의 핵심 주체들은 설계 단계부터 동등하게 참여하지 못한 채 연계 대상으로만 다뤄지고 있다. 이는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기는커녕, 기술을 명분으로 다시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

재난 대응의 성패는 시스템의 화려함에 있지 않다. 누가 상황을 판단하고, 누가 지휘하며, 그 결정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현장에 전달되는가에 달려 있다. 조직과 권한의 문제를 외면한 채 구축된 시스템은 위기 앞에서 또다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소방의 차세대’가 아니라 ‘국가 재난 대응의 차세대’다. 이를 위해서는 단일 부처 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조정과 책임 아래 법·조직·지휘 체계를 함께 재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차세대 119는 또 하나의 고가 시스템으로 남아, 다음 참사 이후 책임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정보화 사업이 아니다. 국가가 재난 앞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 대가는 언젠가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편집국

<저작권자 © 재난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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