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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행정의 최악의 순간을 가정한 대응 체계를 꺼내 들었다. 전산 장애나 시스템 마비 상황에서도 시민이 체감하는 행정서비스가 끊기지 않도록, 디지털을 내려놓고 종이로 돌아가는 비상 절차를 제도화한 것이다.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전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한 업무관리 수기문서 처리 표준 매뉴얼을 마련하고, 이를 실제 행정 환경에서 검증하는 전 부서 합동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행정이 멈추는 순간 행정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국가 전산 인프라 화재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시스템이 동시에 중단되며 민원 처리와 내부 업무가 장기간 정체됐던 사건을 직접적인 계기로 삼았다. 당시 드러난 문제는 단순한 시스템 장애가 아니라, 대체 수단이 사라진 행정 구조 자체의 취약성이었다.
특히 서울시는 전자결재와 전산 시스템이 행정의 기본값이 된 지 오래인 만큼, 다수의 공무원들이 실제로는 종이 문서 작성이나 수기 결재를 경험해보지 못한 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스템이 정상일 때는 효율적이지만, 장애가 발생하면 오히려 대응 능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특정 인력의 경험이나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동일한 방식으로 즉시 움직일 수 있는 수기 행정 절차를 표준화했다. 전산 장애 발생 시 문서 작성과 결재, 접수와 발송을 종이 기반으로 전환하는 흐름부터, 문서 번호 부여와 등록 관리, 관인이 필요한 문서의 예외 처리, 시스템 복구 이후 전자 기록으로의 재정비까지 전 과정을 세분화했다.
매뉴얼에는 기술적 절차뿐 아니라 실제 혼선을 막기 위한 운영 기준도 담겼다. 장애를 인지하고 보고하는 체계, 부서별 역할 구분, 비상 연락망 가동 방식 등이 함께 정리돼, 전산 여부와 관계없이 행정 판단과 책임 구조가 유지되도록 설계됐다. 서울시는 이 매뉴얼이 책상 위 계획에 그치지 않도록, 2월 초 사흘간 본청과 사업소를 포함한 700여 개 전 부서가 동시에 참여하는 모의훈련을 진행한다. 행정포털과 핵심 업무 시스템이 중단된 상황을 가정하고, 전 직원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수기문서를 활용해 민원과 내부 결재를 실제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번 훈련은 제도 도입을 알리기 위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행정 재난 상황에서 매뉴얼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전 직원이 동시에 시험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애 인지부터 업무 처리, 복구 이후 기록 정합성 확보까지 전 단계를 실습 중심으로 점검한다. 서울시는 이번 대응 체계를 통해 전산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행정이 지속될 수 있는 업무 연속성 기반을 강화하고, 훈련 결과를 반영해 매뉴얼을 보완한 뒤 자치구와 산하기관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강옥현 서울시 디지털도시국장은 “시스템이 멈춰도 시민을 향한 행정은 단 한순간도 멈춰서는 안 된다”며 “이번 기준은 단순한 종이 문서 매뉴얼이 아니라, 재난과 장애 상황에서도 현장에서 즉시 작동하는 행정의 생존 규칙”이라고 밝혔다.
-이정직기자
이정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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